8개의 높은 봉우리 '마의 코스'를 뚫었다.

제2구간 마등령∼한계령(15.23㎞)

1200∼1300m 거대한 봉, 돌 계단·밧줄 의지하며 '무조건 앞으로'

험한 산 오르고 내리며 설악 비경·장엄함 가슴 속에 가득 담아

"산이 있어 산에 가고, 산이 좋아 산에 간다."

누군가 '왜 힘들게 산에 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산악인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난 4월 19일 백두대간 대장정 제1구간 진부령∼미시령 15.6㎞를 무사히 마친 'S&T중공업 백두대간 종주팀(이하 종주팀)'은 본격적인 설악산 구간인 마등령∼한계령(15.23㎞)에 오르는 것에 대한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자신감으로 넘쳤다. 박재석 종주팀장과 박광호 등반대장을 비롯한 11명의 종주대원, 그리고 2구간부터 새롭게 참여한 S&T그룹 관계자, 직원을 포함해 23명이 함께 길을 나섰다.

◇8번 오르고 내린 공룡능선

설악의 속살은 새벽녘 짙은 안개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동료의 숨소리, 땀내음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출발점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속초시 경계에 있는 마등령(馬等嶺)으로, 고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해발 고도가 무려 1220m에 이른다. 마치 말의 등처럼 생겼다고해서 붙여진 마등령은 설악의 주봉인 대청봉까지 이어지는 공룡능선의 기점이다.

높이가 말해주듯 마등령은 설악구간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개다.

본격적인 공룡능선 산행이 시작됐다. 평균 1200∼1300m급 봉우리 8개를 넘어야 한다. 산을 즐겨찾는 사람도 이 구간을 '마(魔)의 코스'로 부를 정도로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셀 수 없는 돌 계단과 한가닥 밧줄에 의지해 오르고 내리면서 몇개의 봉우리를 넘었는지 잊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잊은 것이 아니라 산은 셀 수 있는 여유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도 박광호 등반대장을 비롯한 11명의 종주대원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보다 더 큰 배낭을 짊어진 남봉순 대원, 정을종·하도생 부대장, 서상조·정연억·김만출 대원 등 배테랑은 전체 종주팀을 앞 뒤에서 이끌었다. 1구간에서 무릎 부상으로 힘든 산행을 한 정재근 대원도 이번만큼은 남다른 각오였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말처럼 공룡능선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무조건 전진'밖에 없었다. 힘든 산행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역시 동료애였다. 물 한 모금 나눠 마시고 오이 한 조각으로 갈증을 달래면서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서로에게 불러 넣었다. 안개가 걷히고 시원스레 펼쳐진 설악의 비경이 하나 둘씩 드러나자 천금만금 무거운 발걸음에 힘이 붙었다. 마등령을 출발한지 6시간 가량 지나 1차 목적지인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했다.

◇서북능선 그 화려함을 따라

대원들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에 비교적 늦은 저녁을 해결한 종주팀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산행으로 인한 고단함에 여기저기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와중에 박재석 팀장과 조용만 부팀장, 박광호 등반대장은 다음날 일정과 대원들의 컨디션을 체크하느라 밤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악의 정적을 가르는 풀벌레 소리와 깨끗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별빛을 가득 품은 희운각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맑은 공기 탓일까 잠에서 깬 대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대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희운각 대피소 주변은 물론 전날 저녁 준비 후 쌓인 쓰레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배낭에 담았다. 언제 일어났는지 홍보 담당 서상조 대원은 '설악의 아침'을 담기 위해 대원들보다 일찍 일어나 가까운 봉우리를 섭렵했다.

2차 목적지인 중청을 향한 첫 걸음이 오전 8시 시작됐다. 출발 구호는 역시 '위 캔 두 잇'이었다. 백두대간 주능은 희운각 대피소 뒷길이지만 휴식년제 시행으로 길이 막혀 하는 수 없이 대피소 맞은 편 소청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갯수를 헤아릴 수 없는 나무 계단을 따라 올랐다.

소청 대피소를 거쳐 중청에 이르는 구간은 종주팀을 괴롭혔던 공룡능선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멀리 속초 앞바다의 시원한 바람도 함께 가져다 준 환상의 코스 그 자체였다. 주봉 대청봉을 거쳐 한계령까지 이어지는 서북능선은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많지 않아 첫날 산행보다 부담감이 덜 했다.

귀떼기청봉 가는 길과 한계령으로 향하는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제는 거의 내리막 구간이다. 하지만 산행 안전의 복병이 바로 내리막 구간이라는 교훈을 익히 알고 있는터라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설렘보다 오히려 긴장감이 감돌았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하네

삼거리 갈림길에서 한계령 휴게소까지 거리는 2.3㎞, 2시간 조금 더 걸렸다. 마지막 일행까지 한계령에서 마주한 시간은 오후 2시 30분, 희운각 대피소를 출발한 지 6시간 30분만이다. 하루 반나절만에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다. 차 소리와 왁자지껄한 사람 틈에서 산의 소중함을 실감했다.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느끼는 감정은 매번 다르다. 이번 산행은 설악의 비경과 장엄함을 가슴 가득 담아온 것이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소득이 아닐까.

구간 종주를 마쳤다는 안도감에 하덕규 작사·작곡,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 노랫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 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 가라 내려 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 가라 내려 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